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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자화상에 관한 이야기_구조물 그림자 속 나.

by jbzip-photostory 2025. 5. 9.

나는 왜 내 그림자를 찍는가

어느 빛이 좋은 날, 산책 중에 그림자와 마주쳤다. 그림자 속에는 내가 있었고, 창살 같은 구조물이 있었고, 빛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그림자’가 아니었다. 그날의 따듯했던 느낌, 멈추어 선 나의 상태까지도 고스란히 드러나는 또 하나의 나였다. 사진 속 구조물 틈 사이로 길게 드리워진 실루엣은 바로 나! 햇살은 강했지만 따뜻했고, 그림자는 분명하지만 부드럽게 느껴졌다. 셔터를 누르며 나란 존재의 뚜렷함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구조물 그림자 속에 드리워진 자화상 실루엣
햇빛 아래 구조물 그림자 사이에 길게 드리워진 자화상

 

이 사진은 빛이 만든 경계와, 그 경계 안에 들어선 나의 그림자를 함께 담고 있다. 철제 구조물은 바닥에 선을 만들고, 나는 그 선 사이에 자연스럽게 끼어 있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마치 이 자리를 위해 기다려온 듯한 빛이 만든 연출이었다. 카메라를 손에 들고 있는, 그 실루엣은 나의 모습이다. 사진을 찍는 내가 동시에 사진 속 주인공이 되었다. 1인 2역을 한 셈이다. 이 사진은 어쩌면, 내가 가장 좋아할 나의 사진이 될 것 같은 느낌이다.

타원 안에 선 나 — 그림자라는 프레임

동그란 원 위에 드리워진 나의 그림자
난간의 그림자와 타원형 프레임이 만들어낸 공간 속 자화상.

 

두 번째 사진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그림자 위의 원형이었다.  그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는 바닥의 일부분이다. 하지만 그 애매한 프레임 안에 들어선 내 실루엣은 마치 어딘가에 갇혀 먼 곳을 응시하는 거처럼 보이기도 한다. 철제 난간은 규칙적인 패턴과 선을 만들고, 내 그림자는 프레임 안에 서 있는 또 다른 ‘존재’가 된다.

 

촬영 팁을 이야기하자면,
그림자 사진은 계획보다 발견에 가까운 작업이다. 정해진 구도보다, 우연히 생겨나는 형태를 관찰하고 그 안에서 프레임을 잡는 것. 이 사진에서는 광각 렌즈를 활용해 구조물의 반복 패턴을 살렸고, 노출은 그림자 디테일을 위해 약간 언더로 조정했다. 그림자 사진은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하게 만든다. 실루엣은 나지만, 얼굴도,표정도 없다. 하지만 이 비어 있음이 오히려 더 많은 상상을 하게 만들고 있다.

빛이 만든 나, 그림자 속에서 걸어 나오다

그림자 사진을 찍는다는 건, 나를 뒤에서 비추는 빛과 마주하는 일이다. 정면이 아니라 측면에서 비친 감정, 빛이 만든 구조물의 간격 속에서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바라보는 일.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그림자는 내가 아닌 것 같지만, 가장 나다운 형태일지도 모른다.’

흑백으로 처리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색이 없다면 감정이 더 또렷해지기 때문이다. 그림자 사진 속에서, 나는 나를 본다. 하지만 그건 거울에 비친 내가 아니라 빛의 각도, 구조물의 패턴, 그리고 당시의 내 감정이 함께 만든 하나의 흔적과 같다.

“그림자를 찍는다는 건 결국, 빛과 선이 만들어낸 나의 또 다른 얼굴을 담는 일이다.”

그날 나는 그렇게 나를 프레임 안에 세웠다.
그리고 셔터를 눌렀다. 아주 조용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