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틈 사이로 빛이 스며들다 – 강화도에서 마주한 장면
언젠가부터 나는 낡은 집이나,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들을 찾아다니는 일이 잦아졌다. 사람이 떠난 자리에 남겨진 흔적은 늘 말을 걸어온다. 강화도 외진 도로를 달리다 문득 눈에 들어온, 주변의 나무에 둘러싸인 채 숨죽인 빈집 한채. 처음엔 그저 지나칠 생각이었지만, 그 분위기에 차를 멈추고 내 발걸음은 그 집 앞으로 향했다. 천천히 다가가던 중, 무언가 시야를 가득 메웠다. 그것은 풍경이 아닌 감정이었다.
그 순간 나는 카메라 셔터를 천천히 누르며, 그 집을 배경 삼아 흐릿한 감정들을 한 프레임에 담았다. 초점은 선명하지 않지만, 이 사진이 전하려는 이야기는 오히려 더욱 분명해 질거라 생각했다.
물결처럼 흔들린 기억의 집
이 사진은 흔들렸다. 하지만 그 흔들림은 실수가 아닌 의도적 흔들림이었다. 나는 셔터를 누르는 순간, 카메라를 아주 조금 움직였다. 시간이 흐르듯, 기억이 흐르듯, 이 분위기도 흔들려야만 제대로 감정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뚜렷한 외형 대신 남은 건 감정의 흐름이었다. 나무는 빛에 반사되어 빛나고, 폐가는 중심을 살짝 잃은 채 서 있다. 바람도, 햇살도, 적막함도 모두 이 안에서 함께 흔들린다.
이 집은 분명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도 없다. 남아 있는 건, 지나간 시간과 그 흔적들. 나는 첫 느낌의 그 흔적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기보다, 그 감정을 상상하게끔 하는 것이 더 좋다고 느꼈다. 기억 속의 외갓집을 생각하며...
구조물과 창, 흔적을 붙잡는 구도
흔들리는 집의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또 다른 프레임을 발견했다. 오래된 솥이 남겨져 있었다. 이제는 쓰이지 않는 조리도구가 남아 있다는 건, 이 공간이 한때 누군가의 부엌이었음을 말해준다. 삶의 온기가 머물렀던 자리, 그러나 지금은 먼지와 고요만이 자리를 채운 공간. 그 주방의 큰 창문으로 들어오는 자연광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창문 너머로는 나뭇가지들이 그림자처럼 보였고, 그것은 마치 시간의 가지처럼 느껴졌다.
사진의 프레임 중심에 선 파란 구조물은 무너져 가는 집의 균형을 마지막으로 붙들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빛이 살짝 닿는 구조물에 블루 한 색감은 입혔다. 파란색은 이 공간에 머물렀을 가족의 이야기, 사라진 온기를 차분히 되새기게 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정서가 이 구조물과 함께 느낄 수 있도록 사진으로 표현해 봤다.
무너짐 속에서도 '창문, 그림자, 색, 구조의 모든 요소가 함께 어우러져, 하나의 이야기로 내 눈에 들어왔다. 마치 떠나고 아무도 없는 나의 외갓집을 보는 듯했다.
촬영 팁 – 감정의 초점 맞추기
사진에서 선명한 사진도 중요하지만, 나는 완벽한 초점보다 감정의 초점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음은 내가 촬영하면서 적용한 몇 가지 팁이다.
- 느린 셔터 + 손떨림: 일부러 셔터 속도를 1/5~1/10초 정도로 설정한 뒤, 미세한 흔들림을 주어 장면을 몽환적으로 표현했다. 삼각대보다 손 촬영이 적합하다.
- 흑백 모드 활용: 색의 정보는 제거하고, 형태와 명암만 남기면 더 깊은 감성이 부각된다.
- 프레이밍: 폐가의 구조적 특징을 강조하고 싶다면 직선 구도보다는 비대칭적 구도로 감정을 표현해 보자.
마무리하며
흔들린 장면 속에서 우리는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본다. 선명함이 말하지 못한 감정, 시간, 기억의 조각들. 강화도나 지방의 오래된 동네는 나에게 ‘흐릿함의 가치’를 새삼 되새기게 해 준다.
사람이 떠나고, 세월이 무너진 공간에서도 빛은 여전히 스며들고 있다. 그 빛을 사진으로 붙잡을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이 작업은 충분히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언젠가, 이 장면 역시 누군가의 기억 속에 흔들리며 스며들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