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기억의 집에 남은 두 개의 창, 강화도 폐가에서 만난 이야기

by jbzip-photostory 2025. 5. 8.

기억의 틈 사이로 빛이 스며들다 – 강화도에서 마주한 장면

언젠가부터 나는 낡은 집이나,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들을 찾아다니는 일이 잦아졌다. 사람이 떠난 자리에 남겨진 흔적은 늘 말을 걸어온다. 강화도 외진 도로를 달리다 문득 눈에 들어온, 주변의 나무에 둘러싸인 채 숨죽인 빈집 한채. 처음엔 그저 지나칠 생각이었지만, 그  분위기에 차를 멈추고 내 발걸음은 그 집 앞으로 향했다. 천천히 다가가던 중, 무언가 시야를 가득 메웠다. 그것은 풍경이 아닌 감정이었다.
그 순간 나는 카메라 셔터를 천천히 누르며, 그 집을 배경 삼아 흐릿한 감정들을 한 프레임에 담았다. 초점은 선명하지 않지만, 이 사진이 전하려는 이야기는 오히려 더욱 분명해 질거라 생각했다. 


물결처럼 흔들린 기억의 집

나무 사이에 자리한 강화도 폐가의 흑백 흔들린 이미지
고의적 흔들림을 통해 시간의 흐름과 감정의 잔상을 시각화했다. 나무와 집이 어우러진 몽환적인 풍경이 흑백 톤으로 표현했다.

 

이 사진은 흔들렸다. 하지만 그 흔들림은 실수가 아닌 의도적 흔들림이었다. 나는 셔터를 누르는 순간, 카메라를 아주 조금 움직였다. 시간이 흐르듯, 기억이 흐르듯, 이 분위기도 흔들려야만 제대로 감정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뚜렷한 외형 대신 남은 건 감정의 흐름이었다. 나무는 빛에 반사되어 빛나고, 폐가는 중심을 살짝 잃은 채 서 있다. 바람도, 햇살도, 적막함도 모두 이 안에서 함께 흔들린다.
이 집은 분명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도 없다. 남아 있는 건, 지나간 시간과 그 흔적들. 나는 첫 느낌의 그 흔적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기보다, 그 감정을 상상하게끔 하는 것이 더 좋다고 느꼈다. 기억 속의 외갓집을 생각하며...


구조물과 창, 흔적을 붙잡는 구도

폐가 내부의 파란 구조물과 창문을 담은 사진
폐가 내부 주방으로 보이는 공간에서 촬영, 푸른 기둥과 창문을 통해 외부 나무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어둠과 빛, 인간의 흔적이 조용히 겹쳐진다.

 

흔들리는 집의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또 다른 프레임을 발견했다. 오래된 솥이 남겨져 있었다. 이제는 쓰이지 않는 조리도구가 남아 있다는 건, 이 공간이 한때 누군가의 부엌이었음을 말해준다. 삶의 온기가 머물렀던 자리, 그러나 지금은 먼지와 고요만이 자리를 채운 공간. 그 주방의 큰 창문으로 들어오는 자연광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창문 너머로는 나뭇가지들이 그림자처럼 보였고, 그것은 마치 시간의 가지처럼 느껴졌다.

사진의 프레임 중심에 선 파란 구조물은 무너져 가는 집의 균형을 마지막으로 붙들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빛이 살짝 닿는 구조물에 블루 한 색감은 입혔다. 파란색은 이 공간에 머물렀을 가족의 이야기, 사라진 온기를 차분히 되새기게 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정서가 이 구조물과 함께 느낄 수 있도록 사진으로 표현해 봤다. 

무너짐 속에서도 '창문, 그림자, 색, 구조의 모든 요소가 함께 어우러져, 하나의 이야기로 내 눈에 들어왔다. 마치 떠나고 아무도 없는 나의 외갓집을 보는 듯했다.


촬영 팁 – 감정의 초점 맞추기

사진에서 선명한 사진도 중요하지만, 나는 완벽한 초점보다 감정의 초점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음은 내가 촬영하면서 적용한 몇 가지 팁이다.

  1. 느린 셔터 + 손떨림: 일부러 셔터 속도를 1/5~1/10초 정도로 설정한 뒤, 미세한 흔들림을 주어 장면을 몽환적으로 표현했다. 삼각대보다 손 촬영이 적합하다.
  2. 흑백 모드 활용: 색의 정보는 제거하고, 형태와 명암만 남기면 더 깊은 감성이 부각된다.
  3. 프레이밍: 폐가의 구조적 특징을 강조하고 싶다면 직선 구도보다는 비대칭적 구도로 감정을 표현해 보자.

마무리하며

흔들린 장면 속에서 우리는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본다. 선명함이 말하지 못한 감정, 시간, 기억의 조각들. 강화도나 지방의 오래된 동네는 나에게 ‘흐릿함의 가치’를 새삼 되새기게 해 준다.
사람이 떠나고, 세월이 무너진 공간에서도 빛은 여전히 스며들고 있다. 그 빛을 사진으로 붙잡을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이 작업은 충분히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언젠가, 이 장면 역시 누군가의 기억 속에 흔들리며 스며들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