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재개발 지역 경계에서 마주한 노란 벽과 회색 배관, 그리고 언덕길을 내려오는 노인의 뒷모습. 색과 구조, 사람과 시간이 교차하는 도심 속 장면을 담은 감성 사진 이야기.
노란 벽은 언뜻 보기엔 따듯해 보인다. 하지만 회색의 벽면과 그 위에 얽힌 가스 배관, 그리고 아래 놓인 빨간색의 소화기가 있는 분위기는 오히려 묵직해 보였다. 이 장면은 서울의 오래된 주택가, 그중에서도 재개발이 시작되고 있는 동네의 경계의 지점에서 마주한 풍경이다. 사람들은 떠나고 주변의 집들은 하나둘 철거되고 있었다. 이 벽도 조만간 사라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벽 위에는 어색할 만큼 작은 창문 하나가 보였다. 실내에서는 채광도 통풍도 어려울 듯한 이 창문은, 이 벽이 단순한 외관이 아니라 실제로 누군가의 생활의 일부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거칠게 칠해진 노란색 페인트, 마감되지 않은 듯한 투박한 회색 면의 경계선, 그리고 가스 배관들이 어딘지 모르게 도시의 시간이 응축되어 있다는 느낌을 준다.
내가 이 장면을 찍은 건 단지 색의 대비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직도 남아 있는 생활의 흔적과 색감이 만들어낸 도시의 초상 같은 이 장면은, 마치 사람의 내면처럼 복잡하면서도 단정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촬영 팁
색 대비 활용: 노란색과 회색처럼 강한 색 대비를 이루는 곳을 촬영한다면, 프레이밍을 단순화해 색과 선만 남도록 구성해 보자.
수직과 수평 정렬: 배관과 창문의 수직 수평이 명확한 구조이기 때문에, 수직과 수평을 잘 정렬해야 한다.
프레이밍에서 비워두기: 하단에 소화기 하나가 놓여있는 구조는 공간감과 대비를 더욱 살려준다. 일부러 비워두는 여백을 고려해 보자.
올라가듯 내려오는 사람— 재개발 경계에서 마주친 순간
같은 장소, 거의 같은 구도지만, 이 사진엔 한 사람이 등장한다. 등 돌린 채 골목길을 내려오는 할머니. 지팡이를 짚은 그의 모습은 얼핏 보면 언덕을 오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내려오는 중이었다. 몸의 무게를 지탱하며 천천히 뒤로 내려오시는 할머니의 동작은 역방향의 시간처럼 보였다.
언덕을 뒤로 천천히 내려오는 모습을 마주한 순간, 나도 모르게 셔터를 눌렀다. 똑같은 배경 속에 시간과 존재가 더해졌을 때 사진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 같았다. 배관과 벽면, 색의 대비로만 구성된 정적인 이미지에 할머니 한 분이 더해졌을 뿐인데, 감정은 훨씬 더 강하게 다가왔다. 이 지역은 재개발을 앞두고 있다. 할머니의 모습은 이 골목의 지난 시간, 그리고 머지않아 사라질 일상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익숙함과 낯섦이 동시에 존재하는 장면 속에서, 아무도 보지 않을지라도, 나는 이 순간을 남기고 싶었다.
촬영 팁
같은 장소, 다른 타이밍: 풍경 사진을 찍은 후 그 자리에 머물러 사람의 움직임을 기다려 보자. 같은 구도에서도 시간의 흐름이 이야기를 바꿔 줄 수도 있다.
움직임과 정지의 대비: 정적인 벽면과 움직이는 인물을 대비시켜 프레임 내에서 긴장감을 표현할 수 있다.
셔터 타이밍: 인물이 프레임 안에 적절히 들어왔을 때, 특히 선들과의 위치 관계가 조화를 이룰 때, 그 타이밍을 잘 맞춰 촬영하자.
멈춰진 시계와 반대편의 아파트
아무 말 없이 시간이 멈춘 시계 하나가 벽에 붙어 있었다. 고장 난 시계는 한때의 흐름을 품은 채, 더 이상 현재를 가리키지 못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시계의 유리면에는 아주 생생한 지금이 반사되어 들어와 있었다. 반대편, 이전에는 오래된 연립주택들이 줄지어 있었던 자리에 들어선 반듯한 아파트 단지. 고요하게 멈춘 시계 속으로 새로 지어진 회색빛 고층 아파트들이 또렷하게 들어와 있었다.
사진을 찍으며 나는 잠시 멈춰 선 시간과 멈출 수 없는 변화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재건축은 도시의 순환이자 성장의 상징이지만, 그 과정 속에는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도 분명히 있다. 이 벽에 붙은 시계는 기억을 품은 채 버텨 온 마지막 조각처럼 느껴졌다. 바늘은 움직이지 않지만, 그 안에 비친 현실은 너무도 역동적이었다.
이 장면은 단순히 고장 난 시계에 대한 시선이 아니라, 변화 속에 잠시 멈춘 과거와,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현재가 한 프레임 안에 공존하는 장면이다. 도시가 변할수록, 나는 이런 흔적들을 더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비록 시간은 멈췄지만, 그 속에 들어온 현실 세계는 오히려 지금 이 순간의 진실을 더 깊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세 장의 사진은 서울의 한 모퉁이에서 마주한 작고 조용한 풍경이지만, 그 안에 삶의 무게와 도시의 분위기, 그리고 변화의 시간을 담고 있다. 앞으로 이 골목이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지만, 나는 이 벽 앞에서 지나간 시간을 잠시 붙잡아 두었다. 그리고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