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상이 머무는 공간, 의자와 그림자
나는 흔적에 대해 관심이 많고, 그 흔적을 촬영하곤 한다. 지나간 시간과 자리에 남겨져 있는 잔상들. 사람도, 빛도, 소리도 사라져 가지만, 그 자리에 잠시 머물다 간 존재의 무엇인가가 남아 있다면 그건 사진으로 기록할 수 있는 존재의 흔적이다. 그렇게 어느 날, 나는 한적한 공간 속에 놓인 의자 하나를 마주했다. 테이블과 같이 있는 의자의 조합보다 내 눈길을 잡은 건, 그 뒤로 비치는 그림자였다.
빛은 벽을 도화지 삼아 의자의 뼈대를 길게 드리웠다. 마치 그 자리에 앉아 있던 누군가의 체온이 아직 남아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의자의 그림자는 실제보다 더 진한 존재감으로 다가왔다. 어쩌면 그것은 떠나고 없는 존재의 부재가 주는 가장 강렬한 흔적일지도 모르겠다.
사진을 찍으며 나는 일부러 그림자 쪽에 포커스를 맞췄다. 빛이 만든 실루엣은 생각보다 강렬했고, 그 속에서 시간의 흐름이 느껴졌다. 이 장면은 내가 떠난 후 다시 사라질 것이다. 시간의 흐르고 의자와 빛의 각도가 변하면 그림자는 사라지거나 전혀 다른 모습이 되어버리기에, 그 순간을 보고 남기는 것이 내가 좋아하는 것이고 할 일이었다.
백로, 조용한 움직임의 잔상
반면, 또 하나의 사진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잔상을 남긴다. 하얀 백로가 고요하게 앉아 있던 물가에서 조용히 먹이 활동을 하는 순간, 나는 셔터를 눌렀다. 그 움직임은 너무나 미세했지만, 사진 속 백로는 또 다른 한 마리의 백조로 남아 있었다. 이 장면은 정지된 것이 아니라 시간의 움직임이 함축된 이미지였다. 움직임은 멈췄지만, 그 곡선은 눈에 선했다. 나는 그 찰나의 순간을 ‘잔상’이라 부르고 싶다. 시간의 흐름에 형태는 사라졌지만, 시선과 감정 속에 남아 있는 '잔상' 말이다.
백로를 찍을 때 약간의 거리감은 있었지만, 물 위라는 공간의 구도들 활용할 수 있었기에 시선의 흐름이 자연스러웠던거 같다. 이 날은 약간의 바람은 불었지만, 하늘은 깨끗했다. 백로의 움직임이 더욱 극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수면에 비친 또 다른 '반영'일 거라 생각한다.
잔상을 담는다는 것, 사라졌지만 남겨진 모든 것들
이 두 장의 사진으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잔상'을 얘기 하고자 한다. 하나는 움직이지 않는 의자에서 오는 잔상이고, 다른 하나는 조용히 사라져 가는 순간의 여운이다. 정적인 것과 동적인 것, 존재와 부재, 그 대비 속에서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이 있다면, 나는 그것을 스스로에 대한 '위로와 위안'이라고 생각한다. 사진을 찍는다는 건, 결국 사라지는 모든 것들을 붙잡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완전할 수 없기에 그 여운이 더 깊이 다가온다. 그림자도 백로도 그 실체가 사라졌기에 마음속에서 더 오래 머무는 거 같다. 나는 그 흔적을 사진으로 남기는 것이 일상이 되고 있다.
잔상을 주제로 한 사진 촬영 팁
혹시 잔상을 주제로 사진을 촬영하고 싶다면, 먼저 빛과 시간의 연관성을 익히는 것이 좋다. 정적인 피사체를 촬영할 땐 그림자의 방향과 길이를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전과 오후, 그 빛은 전혀 다른 그림자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벽이나 바닥이 있는 장소에서 실루엣을 이용하면 감성적인 잔상을 담을 수 있다.
반대로 움직이는 피사체, 특히 움직임을 예측하기 어려운 피사체는 셔터 스피드와 프레이밍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피사체의 움직임을 프레임에서 공간을 확보하고 긴장감을 느껴보는 것도 좋다. 이때는 연속 촬영을 해서 좋은 장면을 얻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배경을 단순화 할 수 있는 구도로 촬영하면 그 잔상이 더 강하게 남는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나는 이 두 장의 사진을 나란히 보고 있으면, 존재하지 않지만 느껴지는 것들, 바로 그 ‘잔상’들이 내 사진 안에 살아 있기를 바란다. 앞으로 어떤 흔적과 잔상들을 마주할지 그 또한 기대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