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동의 빨간 벽에서 시작된 산책
성수동을 걷는다는 건, 뭐랄까? 늘 새롭고 조금은 낯선 감각을 마주하게 되는 일이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도시의 하루 중에서도, 이상하게 어느 장소에선 걸음을 멈추게 된다.
이날도 내가 좋아하는 빨간 벽 앞에서 발걸음이 멈췄다. 늘 그렇듯, 그 벽은 그대로지만 햇빛의 각도와 지나가는 사람, 벽을 빼고는 모든것이 달랐다. 그날따라 햇살이 좀 과하게 내리쬐었고, 벽 위로 그림자가 아주 선명하게 떨어졌다.
빨간 벽에 그려진 전신주의 그림자마저도 작품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오렌지색 스쿠터가 천천히 벽 앞을 지나갔다.
그 장면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한 완성된 구도였다. 벽의 레드와 스쿠터의 오렌지가 잘 어울렸다.
거리에서 발견한, 색의 리듬과 구성
성수동은 요즘 참 많이 바뀌고 있다. 세련된 상점과 팝업 매장이 많아졌고, 골목도 예뻐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딘가에는 여전히 옛 감성이 그대로 남아 있다. 조금만 더 걸어가면, 그런 장면을 마주할 수 있다.
그날 나는 우연히, 노란 택시와 오렌지 스쿠터가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봤다.
사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그 순간만큼은 도시의 색들이 리듬을 타는 것처럼 느껴졌다.
촬영 팁: 색이 강조된 거리 사진을 찍고 싶다면?
컬러 중심의 거리 사진을 담고 싶다면, 배경은 단순한 벽이나 평면 공간이 좋다.
색이 주인공이 되기 위해선 복잡한 배경보다 여백이 더 어울린다.
그리고 순간을 기다리는 인내가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기다림’이다. 아무리 좋은 장소라도, 그냥 휙 지나치면 놓치게 된다. 가끔은 몇 분이고 멈춰서 바라봐야만, 장면이 다가온다.
색은 향수가 된다 — 성수동의 레트로 감성
이 사진들은 단지 컬러가 잘 어우러진 예쁜 장면이 아니다.
한참 전, VHS 느낌 나는 비디오 테이프 속 장면 같기도 하고, 어릴 적 동네 슈퍼 앞에서 봤던 풍경 같기도 하다.
그 감정들이 겹쳐지면서, 이 거리의 분위기가 더 짙게 다가왔다.
붉은 벽, 오렌지 스쿠터, 노란 택시.
이런 조합은 그저 보기 좋은 구성이 아니라, 어쩌면 도시의 기억을 담는 장치 같다.
사람들은 색을 보면 감정을 떠올린다. 그건 냄새나 소리보다도 더 강한 기억의 재료가 되기도 하니까.
성수동 거리 사진 시리즈를 계속하면서, 나는 매일 스쳐 지나가는 골목 속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는지를 자주 생각한다.
길은 매일 똑같지만, 그 안을 채우는 사람들과 물건, 빛과 그림자는 매번 다르다.
그 차이에서, 이야기의 조각들을 건져 올리는 게 나에게는 사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