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노을 속, 신리성지에서 마주한 평온한 순간
해 질 녘이 되자 신리성지는 점점 더 고요함에 빠지고 있었다. 하늘은 붉게 물들었다가 점차 어두워지고, 십자가 위로 퍼지는 부드러운 여명이 이곳의 공간을 감싸고 있었다. 이 분위기에 빠져 하늘을 보고 있는데, 한 무리의 새들이 하늘을 가로지르며 성당 위를 지나가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프레임 속에서 성지의 십자가와 새들이 함께하는 장면이 만들어졌고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평화로운 느낌이 들었다.
이 장면을 흑백으로 표현한 것은, 색이 주는 감정보다 신리성지의 형태와 명암의 대비를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늘에 남아 있는 마지막 빛이 새들의 실루엣을 만들었고, 신리성지의 십자가와 어우러지며 경건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만약 컬러 사진이었다면 노을빛이 강조되었겠지만, 흑백을 선택함으로써 더 강렬하고 깊이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새들은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살아가지만, 십자가는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신앙의 중심을 지키고 있다. 흐르는 것과 영원한 것이 한 프레임 속에서 공존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빠른 셔터 속도를 설정했다. 만약 셔터 속도가 느렸다면 새들의 움직임이 흔들려 보였겠지만, 이번 사진에서는 순간의 정적을 강조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빠르게 지나가는 순간을 촬영하는 것, 그것이 사진이 가진 특별한 힘이 아닐까 싶다. 느린 셔터 속도로 이 사진을 촬영했다면 어떤 분위기로 표현 됐을지 궁금하긴 하다.
나무 사이로 보이는 십자가, 자연이 만든 신리성지의 구도
신리성지 주변을 걷다가 문득 나무 사이로 보이는 십자가가 눈에 들어왔다. 마치 나무들이 성당을 감싸 안으며 보호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두 그루의 나무가 하나의 프레임을 만들고, 그 사이로 성당을 배치한 구도 사진으로 촬영했다.
이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고민을 많이 했다. 나무의 어두운 실루엣이 자연스러운 테두리 역할을 하고, 보는 시선이 자연스럽게 성당으로 집중되도록 만들었다. 흔히 건축물과 자연을 함께 촬영할 때 이런 기법을 활용하면 더욱 감성적인 분위기로 표현이 되는 거 같다.
인공적인 요소와 자연, 그 사이에서 만들어내는 조화는 신앙이 우리의 삶 속에 자연스럽게 자리하는 모습과 닮아 있는 거 같다.
흐릿한 성당의 모습, 기억처럼 번지는 풍경
때때로 의도치 않은 상황이 특별한 사진을 만들어 내곤 한다. 나는 이것이 사진이 주는 우연성이라 하고, 그 우연성은 생각지 못한 훌륭한 사진으로, 사진이 주는 최고의 선물이라 생각한다.
이 사진을 촬영할 때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고, 성당 뒤로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바람에 따라 잔가지들이 움직이며 만들어내는 흐릿한 실루엣이 신비로운 분위를 만들고 있었다. 이 순간은 위에 언급한 첫 번째 사진과는 반대로 느린 셔터속도를 이용했다. 느린 셔터속도가 흔들리는 나뭇가지들의 흐름을 살렸고 성당의 모습도 살짝 번져 보이도록 했다. 만약 빠른 셔터속도를 사용했다면 선명한 이미지가 나왔겠지만, 이 장면에서는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게 더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전체적으로 흐릿한 사진에 한 장은 선명한 사진으로 성당을 촬영했다. 이렇게 촬영한 두 장의 사진을 한 장의 사진으로 작업을 했다. 사진을 보면, 마치 흐릿한 기억 속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촬영 팁! 흑백 사진으로 감성적인 분위기 연출하기
흑백 사진은 색이 주는 다양한 정보를 빼고, 빛과 그림자의 조화를 극대화할 수 있다. 특히 신리성지 같은 분위기를 지닌 공간에서는 흑백 사진이 감정을 더욱 깊이 전달하는데 효과적이라 생각한다. 촬영할 때는 명암 대비를 잘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의 대비가 강할수록 더욱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다. 신리성지에서 촬영한 흑백 사진들은 단순한 풍경을 넘어, 한 편의 스토리가 있는 것처럼 다가오게 만들었다. 또한, 빛이 만들어내는 요소들은 더욱 섬세하게 사람의 감성을 건들릴 수 있다. 십자가 위로 퍼지는 빛이나,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여명 같은 것들이 흑백 사진에서는 더욱더 사람의 감성을 자극할 거라 생각한다. 이러한 것들을 의도적으로 표현한다면 같은 장면도 전혀 다른 느낌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빛과 신앙이 만든 공간
신리성지는 단순한 성지가 아니라, 자연의 빛과 신앙이 어우러진 공간이었다. 흑백 사진을 통해 그 순간들을 촬영하면서,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공간의 의미를 생각하게 했다. 사진은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라, 감정과 기억을 담아내는 상상의 언어라고 나는 주장한다.
앞으로도 빛과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특별한 순간들을 관찰하고 나만의 시선으로 이미지를 촬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