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담기 위한 여백, 송전탑은 말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 중 하나는 꼭 무언가를 가득 담은 사진이 아니라, 비워두는 사진이다. 이번 사진도 그랬다. 카메라를 들고 조용히 바라보다가, 문득 하늘을 등지고 있는 구조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때부터 이 구조물은 단순한 금속 덩어리가 아니었다. 마치 멈춰 있되 흐르는 듯, 내 감정을 그대로 투사하고 있었다.
일부러 구조물의 왼쪽엔 넓은 하늘을 남겼다. 감정을 담기 위한 여백이었다. 우리는 늘 꽉 찬 프레임을 향해 나아가지만, 사실 진짜 이야기는 그 비워둔 곳에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나는 프레임을 구성할 때 이 여백이 중요하게 생각한다. 구조물의 선과 하늘이 만나는 경계, 그리고 비워진 여백에 나의 감정도 서 있었다.
햇빛이 강하지 않은 흐린 날이었다. 디테일이 번지지 않도록 노출은 살짝 언더로 맞췄다. 감성적인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 콘트라스트는 낮추고, 약간의 색온도 조절로 잔잔한 톤을 유지했다. 프레임의 왼편으로 비워진 공간은, 언젠가 채워질 나의 어떤 장면을 상상하게 만든다. 그게 슬픔이든, 그리움이든, 혹은 새로움이든.
두 개의 송전탑이 교차하는 순간, 우리는 선택의 한가운데에 선다
이 사진은 강화도도, 내가 익숙한 장소도 아니었다. 어딘지 모를 낯선 공간에서 우연히 마주친 구조물 두 개. 두 개의 송전탑이 하나의 시점에서 겹쳐졌다. 서로 다른 방향에서 서 있던 철탑이 마치 한 몸처럼 얽혀 있는 모습을 보며, 문득 ‘우리 삶의 교차점’이 떠올랐다.
삶은 종종 이런 구조물 같다. 각자의 방향과 선들이 있지만, 어느 지점에선 서로 겹치고 얽힌다. 누구와의 인연, 지나온 선택들, 그 모든 교차점에서 우리는 늘 무언가를 결정해야 한다. 이 송전탑이 마주한 지점이 마치 그런 ‘순간의 선택’을 시각화한 듯 보였다.
프레임을 구성할 땐 철탑의 구조적 균형을 맞추는 동시에, 선들이 얽힌 복잡함이 드러나도록 각도를 조정했다. 너무 가까이 다가가지 않고, 선들이 명확하게 교차되는 위치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했다. 이 구조물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건 단순한 구조적 아름다움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긴장감과 감정의 교차였다.
하늘은 뿌연 톤이었고, 그 속에서 구조물은 더욱 선명하게 떠올랐다. 밝기를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선들이 엉켜 보이는 영역에 초점을 맞췄다. 구조물은 움직이지 않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계속 흘러간다. 우리는 그 흐름 위에 서서, 다음을 선택한다.
사진은 구조물이 아니라 그 안의 감정을 담는 일
두 사진은 전혀 다른 곳에서 찍혔지만, 내게는 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첫 번째 사진은 감정을 머물게 하기 위한 여백을 담았고, 두 번째 사진은 우리가 늘 서 있는 선택의 교차점을 그려냈다. 구조물이 그저 풍경이 아닌 이유는, 그 안에 나의 시선과 마음이 함께 있기 때문이다.
사진을 찍을 때 항상 생각하는 건 ‘무엇을 찍는가’보다 ‘왜 찍는가’다. 그 순간 내가 그 구조물 앞에 선 이유가 있고, 셔터를 누른 감정이 있다면, 그 사진은 보는 사람에게도 분명히 전해진다고 믿는다.
내가 느낀 여백과 교차점, 구조물과 감정의 흐름이 이 사진을 보는 여러분에게도 조금이나마 닿기를 바란다. 때로는 비워둔 공간에서, 때로는 얽힌 선들 사이에서 우리는 삶을 마주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