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맞으러 가는 길, 아무도 살지 않는 그곳으로
사진을 좋아하는 친구와 함께 강화도로 향했다. 차 안에서 친구가 꺼낸 말 한마디가 목적지가 되었다. “아무도 살지 않는 집에서 봄을 마주하고 싶다고.” 나도 적극적으로 동의했다. 그래서 떠난 여정, 누군가의 흔적은 남아 있지만,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집. 계절이 스치듯 머물다 가는 공간, 시간의 흐름이 멈춘 듯한 집을 찾아 나섰다.
동네를 천천히 돌며 발길 닿는 곳에 멈췄다. 그리고 그곳, 오래된 집 한 채가 눈에 들어왔다. 그 앞에 피어난 하얀 목련과 벚꽃은 너무도 조용했지만 강렬했다. 가지를 흔드는 바람, 그 틈을 비추는 햇살, 꽃잎 사이로 스며드는 계절의 냄새까지. 모든 것이 마치 멈춰 버린 시간 속 오래된 기억처럼 다가왔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집과, 말을 거는 꽃
이 집은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인기척도, 기척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 앞에 선 나와 친구는 서로 많은 이야기를 떠올렸을 것이다. 문을 두드리는 바람, 틈 사이로 비치는 빛, 그 모든 것을 묵묵히 지켜보는 하얀 목련. 셔터를 누르며 생각했다. 지금 이 장면이 내 기억 속 어떤 장면과 닮아 있다는 것을. 이곳은 이제 사람의 삶이 머무는 공간은 아니지만, 계절은 이곳에도 어김없이 찾아온다. 닫혀 있는 대문 앞, 살아있는 듯 피어난 목련은 마치 시간의 틈 사이로 피어난 감정처럼 느껴졌다. 봄은 어쩌면 기억의 모양으로 이곳에 피고 지기를 반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기억의 틈 사이로 피어나는 봄
빨간 지붕 위로 피어난 벚꽃은 오래된 기억을 덧칠한 것처럼 마음 한 구석을 건드렸다. 원래 목적지가 있었지만, 그 계획을 내려놓고 이곳에서 남은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이 집에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유년 시절을 보냈던 아이들의 웃음, 봄마다 꽃잎을 쓸던 손길, 창문 너머 세상을 바라보던 어떤 이의 눈빛. 그 모든 것이 상상 속에서 되살아났다.
이날 하루의 끝자락에 이 집이 남아 있었던 것은 묘한 위로가 되었다. 집을 떠나며, 우리는 이 공간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돌아오는 길, 마음속에 남은 바람은 이것이었다. 이 집이 여전히 누군가의 봄을 품은 채, 기억을 선명하게 되살리는 공간으로 남아 있기를.
촬영 팁: 감성을 담기 위해선 시간보다 감정이 우선
이런 감성 사진을 찍을 때 가장 중요한 건 ‘느낌’이다. 어떤 구도보다, 어떤 카메라 설정보다 먼저 중요한 건 내가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이다. 폐가처럼 스토리를 품고 있는 장소에서는 그 느낌이 특히 중요하다. 피사체에 드리우는 빛과 그림자, 프레이밍의 깊이까지 감정을 이입하며 셔터를 눌러보자.
공간이 좁다면 너무 넓은 화각의 렌즈보다는 살짝 망원에 가까운 렌즈로 배경을 정리해 보는 것도 좋다. 만약 광각 렌즈를 사용할 거라면, 얕은 심도를 활용해 피사체를 강조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마음이 이끄는 방향으로 걷고, 느끼고, 담아내는 것. 그래서 감성은 기술보다 인간적이고 따듯함이 있어 좋다.
잊힌 것들에 대한 예의
강화도의 이 오래된 집 앞에 서서 우리는 한참을 머물렀다. 아무도 살지 않는 이 집이 왜 그리 따뜻하게 느껴졌을까. 왜 꽃은 이토록 찬란하게 피어 있었을까. 아마도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지나치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잊힌 공간과 그 곁에 피어난 꽃은 말해준다.
비록 시간이 흘러도, 마음속에 간직한 기억들은 언제고 다시 피어날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