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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의 선명함, 그리고 기억의 흐릿함 유리창에 맺힌 추억의 조각들나는 비를 아주 많이 좋아한다. 특히, 비가 오는 날 커피 향 가득한 차 안에서 내리는 빗소리와 음악도 듣고, 그렇게 창밖을 바라보는 것이 큰 행복이다. 그저 비가 내리는 풍경을 보는 게 아니라, 유리창에 맺힌 빗방울을 보며 무언가를 떠올리는 일! 유리창에 수많은 빗방울처럼, 기억도 그렇게 맺히는 거 같다. 어떤 기억은 빗방울처럼 또렷하고, 어떤 기억은 저 멀리 흐려진 배경과 함께 흐릿해지기도 한다.이 사진은 빗방울을 따라 오래된 기억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다.창문 너머는 흐릿한데 빗방울은 선명하다.그것은 마음속에 남은 어떤 감정만이 또렷하게 떠오르는 것처럼, 시간은 흐르고 기억은 희미해지는데 그때의 감정은 여전히 생생하다.흐릿한 배경 속에서 더 또렷해지는 감정두 번째 사진은 .. 2025. 4. 22.
성수동 거리에서 마주친 순간들, 세 번째 이야기 성수동 골목에서 만난 풍경, 익숙하지만 낯선 리어카-삶의 무게가 눌러앉은 리어카 앞에서한낮의 햇살이 길게 골목을 가로지를 무렵, 나는 성수동의 한 벽면에서 이 리어카를 발견했다. 산 더미 같이 박스를 실은 리어카. 무심한 듯 세워져 있었지만, 그 안에는 나에게 던지는 무언의 감정이 있었다.리어카의 바퀴를 본 순간, 나는 발걸음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바람 빠진 리어카의 바퀴는 나에게 무게를 말하고 있었다.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버려진 짐을 싣고, 여전히 거기에 서 있는 리어카. 그것은 오히려 이 거리를 걷은 우리들의 모습을 비추는 거 같기도 했다. 늘 무엇인가 짊어지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모습처럼 말이다...초록색 빗자루와 쓰레받기, 성수동 거리의 정서이곳은 내가 주로 걷은 대림창고 라인의 거.. 2025. 4. 21.
서소문 성지역사박물관에서 마주한 하늘을 향한 시선-순교의 흔적과 공간의 울림 순교의 흔적과 공간의 울림 서울 도심 가운데, 서소문역사공원 안에 자리한 서소문 성지역사박물관은 우리가 종종 지나치던 공간이 전혀 다르게 보이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성지역사박물관의 여러 코스가 있는데, 사진을 찍는 내 시선 속에 가장 오래 남은 하늘광장의 그 존재 '서 있는 사람들'은 더 깊이 기억되었다.'서 있는 사람들' 앞에서 멈춘 나의 시선서소문 역사박물관에 여러 관람 코스 중 하늘 광장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높이 솟은 조형물들이 규칙적이 간격으로 늘어서 있는 모습은 단순한 형상이 아니었다. 그 형상들은 거룩한 기억을 품고 당당히 서 있는 듯했다. 하늘 광장에서 나는 많은 시간을 보냈고, 단순히 작품을 '기록'하는 것이 아닌 작품과 공간에서 느끼는 나의 감정을 연결 짓고 싶었다. 이 작품은 .. 2025. 4. 20.
사라진 순간의 온기, 그리고 잔상에 대하여 잔상이 머무는 공간, 의자와 그림자 나는 흔적에 대해 관심이 많고, 그 흔적을 촬영하곤 한다. 지나간 시간과 자리에 남겨져 있는 잔상들. 사람도, 빛도, 소리도 사라져 가지만, 그 자리에 잠시 머물다 간 존재의 무엇인가가 남아 있다면 그건 사진으로 기록할 수 있는 존재의 흔적이다. 그렇게 어느 날, 나는 한적한 공간 속에 놓인 의자 하나를 마주했다. 테이블과 같이 있는 의자의 조합보다 내 눈길을 잡은 건, 그 뒤로 비치는 그림자였다.빛은 벽을 도화지 삼아 의자의 뼈대를 길게 드리웠다. 마치 그 자리에 앉아 있던 누군가의 체온이 아직 남아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의자의 그림자는 실제보다 더 진한 존재감으로 다가왔다. 어쩌면 그것은 떠나고 없는 존재의 부재가 주는 가장 강렬한 흔적일지도 모르겠다.사진을 .. 2025. 4. 19.
성수동 거리에서 마주친 순간들, 그 두 번째 이야기 성수동 거리에서 마주친 순간들어느 날, 사진 동지들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성수동의 익숙한 거리를 가게 되었다. 이곳은 언제나 그렇듯 나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선 상황들을 선물해 준다. 자연이 주는 모든 것들은 성수동의 건물, 그리고 거리의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며 한 프레임 속에 들어오기 때문이다.이날 내 뷰파인더에 두 명의 자전거 탄 사람이 들어왔다. 한 사람은 반쯤 잘린 채 프레임을 휘젓고, 다른 한 사람은 프레임의 가장 먼 곳의 배경에서 같은 방향으로 달린다. 서로 닿지 않을 거리감, 다른 크기, 하지만 붉은 벽면 앞에서 그 둘은 기묘하게도 하나의 흐름처럼 다가 온 순간이었다. 나는 그 간격과 어긋남이 주는 이 상황의 자연스러운 균형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성수동은 일상의 경계에 서 있는 동네라 생각한다... 2025. 4. 18.
신리성지에서 만난 빛과 신앙의 공간 저녁노을 속, 평온한 순간해 질 녘이 되자 신리성지는 점점 더 고요함에 빠지고 있었다. 하늘은 붉게 물들었다가 점차 어두워지고, 십자가 위로 퍼지는 부드러운 여명이 이곳의 공간을 감싸고 있었다. 이 분위기에 빠져 하늘을 보고 있는데, 한 무리의 새들이 하늘을 가로지르며 성당 위를 지나가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프레임 속에서 성지의 십자가와 새들이 함께하는 장면이 만들어졌고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평화로운 느낌이 들었다.이 장면을 흑백으로 표현한 것은, 색이 주는 감정보다 신리성지의 형태와 명암의 대비를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늘에 남아 있는 마지막 빛이 새들의 실루엣을 만들었고, 신리성지의 십자가와 어우러지며 경건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만약 컬러 사진이었다면 노을빛이 강조되었겠지만, .. 2025. 4. 17.